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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이다.
종의 마음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섬김을 위해 부르셨다.
1. 섬기기 위해 내어준다.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일을 한다.
내 스케쥴을 포기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원하시면
일하실 수 있도록 삶을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2.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본다.
이를 위해서는 민감성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작은 일들을 위대한 일들처럼 하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3.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한다.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지면"이라는 핑계보다는
불완전한 섬김이 최선의 의도보다 항상 낫다.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복주시는 섬김의 사역자가 되자.
4. 모든 일에 똑같은 헌신을 해야한다.
일의 규모에 상관없이...
현실은 우리의 성품을 개발시키는 중요한 장소이다.
인생에서 작은 일들은 큰 일을 결정한다.
5. 사역에 충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 은퇴란 없다.
6. 낮은 자세의 유지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의 관객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섬김의 자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신다.
"루터의 95 개조 반박문 읽어 보셨나요?"
- 한국교인 종교개혁 본질 이해 부족...95개조 내용 잘 몰라
▲마틴 루터.
루터의 95 개조 반박문 읽어본 교인 드물다
해마다 종교 개혁 주일이 되면 루터의 종교 개혁, 면죄부, 그리고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등에 대하여 듣는다. 또 학교에서는 세계사 시간에 종교 개혁을 배운다. 그렇지만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라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실제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읽어 본 사람은 아주 드물다.
글쓴이도 95 개조 내용이 궁금했지만, 마땅히 자료가 없어서 보지 못하다가 1990 년대 중반에야 자료를 구하여 읽어 보았다. 다시 말하여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종교개혁만 알았지, 그 때 루터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한계가 아닐지. 이에 이번 종교개혁 기념일에 맞추어 95개조에 있는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겠다.
루터의 종교 개혁,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살던 그 때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레오 10세(1513-1521)는 성 베드로 성당 (요즘도 성탄절에 미사 중계 때 텔레비젼에서 보는) 공사비 때문에 면죄부를 팔았다.
▲마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면죄부를 파는 일행이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왔을 때 이를 본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95개 조항으로 작성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 교회의 벽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며, 금년은 486 주년이 된다.
글쓴이는 학생 시절 종교 개혁을 배울 때 95개조라고 하여, 95 개조 하나하나가 모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인 줄 알았다. 보기를 들어, 1. 교황은 면죄부를 팔지 말아라 2. 교황을 면죄부가 죄를 사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 3. ... 인정하라 4. ... 중지하라 5.... 시행하라 등과 같이.
그런데 역사시간이나 교회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면 루터의 주장이 95개는 고사하고 그저 몇 가지로 요약되기에 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뒤 1990 년대 중반에 실제 95 개조 본문을 볼 때까지 거의 30 년 동안 늘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인가. 95개조 본문을 보는 순간, 아! 하면서 95 개조 하나하나가 요구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터의 종교 개혁 핵심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다음 네 가지로 잘 요약할 수 있다.
- 오직 믿음 (Sola Fide)
-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 오직 은혜 (Sola Gratia)
-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a Deo Gloria)
루터의 95 개조 (Die 95 Thesen, Ninety-five Theses) 소개
종교개혁 - 95개 논제
교구민들의 영혼을 염려하는 목회적 책임감에 움직여 루터는 이미 이전에 행한(1516년 10월 31일과 1517년 2월) 설교에서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였었다. 그러나 고해 문제의 재고 요청들이 결국 실패하자 루터는 공개 논쟁을 요청하기로 결심하여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모든 성인의 날 전날 밤) 전야에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성(城) 대학교회의 정문에 대자보를 써서 내걸었다.
루터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라고 논제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복음의 재발견을 면죄부 문제에 적용하여 “교회의 참 보고(寶庫)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62조)이라고 역설하면서,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천명하였다(68조).
마지막 논제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와 같은 행위의 의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결론 내린다.
루터의 95개 조항
95개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면죄의 권능과 효능에 대한 논쟁은 루터가 쓴 그 어떤 글보다도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통상적으로 읽든 주의 깊게 잃든 이해하기 힘들다. 이 글은 상당한 정도의 예배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95개 조항은 1517년 10월 31일 또는 11월 1일에 비텐베르트 성의 대학교회 정문에 게시되었다. 사실 이 글은 결국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더 근본적인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신학적 사상으로 이끌었던 면죄부의 남용과 관련된 논쟁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그리고 진리를 밝히 드러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래의 논제들을 문학석사이며 신학석사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사 마르틴 루터 신부의 주재 아래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될 주제가 될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그는 직접 토론에 참여하여 이 문제를 토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셨다. 이 뜻은 신자의 생활 전체가 회개적으로 될 것을 의미한 것이다.
2. 이 말씀의 뜻은 신부가 집행하는 죄 자복과 죄 사면에 관한 속죄 성례의 뜻과 전연 다른 것이다.
3. 그러나 회개는 다만 심적 참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욕정을 죽이는 외부의 고행이 또한 있어야 한다.
4. 참된 심적 참회는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5. 법왕은 자기와 자기교회가 만든 법을 범한 죄 외에는 아무의 죄도 사면할 의지도 없고 권한도 없다.
6. 교황은 아무의 죄도 사면할 구원이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사면하심을 공포하거나 보증할 따름이다. 자기 자신이 사면해야 할 경우에는 할 수 있으나 그것도 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그 사람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7. 하나님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하나님의 대표인 신부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8. 교회의 해죄법은 생존자에게만 통용하고 사망자에게는 통용치 말 것이다.
9. 그러므로 교황은 성신의 지도하심을 따라서 발령하되 사망자에 관한 조항은 늘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 신부가 사망자의 연옥고를 교회의 사죄로 면케 한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요 교양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11. 교회 법은 연옥벌로 변한다는 말은 감독들이 잘 때 가라지를 뿌림과 같다.
12. 전에는 교회벌 선고를 사면 후에 하지 않고 전에 해서 참된 통회를 하게 한 것이다
13.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벌칙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14. 죽는 사람이 신앙과 자신에 부정이 있으면 큰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 부정이 심하면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진다.
15. 다른 것은 말고 이 공포만으로도 연옥의 고통에 해당한 것이다. 이 공포는 절망의 공포다.
16. 지옥, 연옥, 천당이 각각 다른 것과 같이 마음의 절망도 평안도 또한 다르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는 자선이 증가되어야 공포가 감소될 것은 사실이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이 직선범위난 자선 증가권 외에 있다는 것은 이지나 성서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19.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자기네들이 누릴 복락을 확신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연옥은 사람이 그 곳에서 얼마 동안 속죄고생을 하면 천당으로 올라가는 곳이라 함).
20. 그러므로 교황이 사람의 모든 지은 죄를 사유한다 하는 것은 자기가 정한 죄에만 국한 된 것이다.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도하기를 교황의 사면부가 사람을 그 받을 모든 형벌에서 석방구원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틀린 것이다.
22. 교황이 연옥에 간 영들이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 법대로 속죄 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23. 만일 어떤 사람의 모든 죄를 사유 할 수 있다면 그런 죄사유함 받을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24.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허울 좋은 약속으로 기만적 사죄를 받을 것이다.
25.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는 저의 교구 내 모든 감독들도 가질 수 있고 모든 목사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6. 교황이 영들의 죄를 사유함에 있어서 직권으로 하지 않고 공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은 바로 하는 것이다(연옥에서 교황 직권도 소용없다).
27. 저희들의(면죄부 파는 자들) 전도하기를 돈이 헌금 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서 나온다고 한다.
28. 돈이 그렇게 쩔렁하고 떨어질 때 탐욕과 무리가 늘어날 것이다.
29.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구속받기를 원하는지 않는지 누가 알 것이냐 성셀비니누스와 파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럴 것이다.
30. 각자가 자기 자신의 회개에 대한 진실성을 알 수 없거든 어찌 자기가 완전히 사죄함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랴.
3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 참으로 회개를 하고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32. 누구든지 면죄부를 받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 저와 저의 선생은 다같이 영원히 멸망될 것이다.
33. 교황의 사죄가 곧 하나님의 지극히 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삼갈 것이다.
34. 이러한 사죄의 의사는 사람이 만들어 논 제도에 의한 속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5. 사람이 만일 면죄부를 사 가지고 영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고 하든지 혹은 면죄부를 사면 저에게는 회개가 필요가 없다고 하는 전도는 기독교 교리가 아니다.
36. 어떤 그리스도인든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 회개하면 저는 면죄부가 없어도 전체 구원의 특전을 얻어서 고통과 정죄함을 면할 수 있다.
37.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면죄부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다.
38. 교황은 사죄도 결코 멸시할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죄하심을 공포하심이 되는 까닭이다.
39. 사죄의 효력과 진정한 회개의 필요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조하는 것은 박학한 신학자라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한 회개는 형벌 받을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사죄를 함부로 하면 형벌감을 완화하고 수형법을 발하게 한다.
41. 사도적 사죄는 이것을 선포하는데 조심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선 사업보다 더 중요시할까 함이다.
42.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 것은 면죄부를 사는 것이 자선사업에 비할 수 없다고 교황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43. 그리스도인이 또 알 것은 이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44. 자선사업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늘어가고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간다. 그러나 면죄부를 사면 저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형벌만 면하게 되는 것이다.
45.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 것은 이 누구든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도웁지 않고 거져 지나가면서 면죄부는 산다면 저는 교황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는 것이다.
46.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 것은 누구든지 큰 부자가 아닌 이상 그 있는 돈을 가지고 자기 집 살림에 보태 쓸 것인지 면죄부 사는데 쓸 것이 아니다.
47. 그리스도인의 알 것은 면죄부 사는 것은 자유로 할 것이요 의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
48.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교황이 죄를 사유할 때에 기도를 요구하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9.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교황이 사죄는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아야 유익한 것이요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읽으면 이는 극히 해로운 것이다.
50.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목사들의 면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이 불에 타 버릴지언정 저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51.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그 목사들이 면죄부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 줄 알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사재로서 면죄부 산 사람들의 낸 돈을 반환해야 할 것이다.
52. 면죄부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고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이다.
53. 면죄부를 선전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황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54. 교회 설교 시간에 면죄부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이 길게 한다든지 혹은 더 길게 하면 이는 잘못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생각에 사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다면 사죄 축하에는 종 하나만 올리고 행렬도 한번만 할 것이다. 그 반면에 있어서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면 복음은 종 백 개로 울려 전하고 성례를 백 번 해서 전할 것이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교인들에게 전연 알리지 아니했다.
57. 그 금고에 세상 재물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써버릴 것이다. 많은 신부들은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다.
58. 면죄부 금고에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황도 모르게 면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한다.
59. 성 로랜스는 말하기를 교회의 보배는 빈곤한 교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에 쓰는 말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교회가 맡은 직권이 곧 교회의 보화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61. 지금 형사를 보면 교황의 권력만이 기결죄와 미결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62. 교회의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러나 그 보화가 천대를 받게 되고 첫째로 있어야 할 것을 것이 끝에 가 서 있다.
64. 면죄부 보화는 맨 끝에 있을 것인데 맨 첫째로 있어 환영을 받고 있다.
65. 복음의 보화는 예로부터 사람을 많이 낚는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보화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다.
67. 신부들이 면죄부가 가장 큰 은혜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모리배의 행위이다.
68. 그러나 면죄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독신에 절대로 비할 수 없다.
69. 감독들과 신부들도 사도의 사면특사를 경건 되게 영접할 것이다.
70. 그러나 저희가 주의할 것은 이 특사들이 교황의 말을 전하는 대신 자기네들의 욕망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71. 누구든지 사도의 사죄에 대한 진리를 반대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72. 그러나 누구든지 면죄부를 선전하는 자의 방종하게 나아감을 반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지어다.
73. 면죄부 매매에 기만적 수단을 써서 그 사죄를 방해하는 것을 교황이 엄금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74. 누구든지 사죄의 미명하에 거룩한 자선의 진리를 기만수단을 씀으로 인하여 중생하면 이는 교황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75. 교황이 사죄권으로 성모에게 범죄함과 같은 용납 불가능한 것까지 사면 할 수 있고 생각하면 이는 참으로 발광적 생각이다.
76.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교황의 사죄는 죄 중에 제일 경한 죽지 않을 죄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 성 베드로 자신도 교황 이상의 은전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은 성 베드로에 대한 큰 모독이다.
78.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현 교황이나 혹은 다른 어느 교황이든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의 능력이요 병 고치는 은사이다(고전12:9∼).
79. 교황의 팔에 다른 휘장들과 같이 있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80. 이러한 언론이 신도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감독, 신부, 신학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81. 사죄에 대한 방종적 설교에 평교인으로부터 예민한 질문이 튀어나오는데 아무리 유식한 학자라도 교황의 위신을 꺾이지 않게 하고 대답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82. 예를 들어 말하면 아래와 같은 질문을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만일 교황이 지극히 거룩한 자선주의를 가지고 영들의 가장 큰 요구를 덜어준다면 왜 연옥 전체를 공존케 못하나 이는 이치에 당연한 대의 명분이다. 성당 짓는 데 돈이 절대 필요하다는 순수한 사유에 교황이 무수한 영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하면 위에 말한 대의명분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지 않은가?"
83. 영들이 연옥에서 구출되어 오면 왜 그런 영들을 위하여 장례미사기일 추도미사를 드릴 것인가 그런 미사를 위하여 기부한 돈은 그런 미사가 소용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84.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하나님의 원수 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에 있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을 구출하는 은혜를 베풀진대 왜 돈을 받지 않고 순전히 은혜로 그런 영을 구출치 않는가 이것이 하나님과 교황이신 무슨 신식은전 인가.
85. 회개한 교역자들 중 이미 별세한 지가 오래고 또 그들의 죄가 사유된 줄 아는데 그네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네들을 위하여 면죄부를 돈주고 사서 그네들을 구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86. 오늘 교황은 부자 중 거부인데 자기의 돈을 들여 성당을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나
87. 참으로 회개하고 온전히(하나님 앞에서)사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어찌 교황이 또 사죄를 하는가.
88. 만일 교황이 하루 한번뿐 아니라 백 번씩이라도 진실한 신자들에게 사죄의 은전을 베풀진대 교회에 얼마나 큰 유익이 될까.
89. 교황의 목적이 영을 구원하는 것이요 돈을 받는 것이 아닐진대 전일에 내린 면죄부가 왜 무효가 되나 그것이 면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인데
90. 평교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증명치 못하고 완력으로만 나아간다면 교회는 그들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 불결하게 할 것이다.
91. 만일 사죄에 대하여 교황이 본의와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92. 그리스도인들에게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하고도 평안이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다 물리칠 것이다.
93.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라 십자가라 하고 십자가가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는 화를 받을 지어다.
94.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이다.
95. 그러므로 많은 고난을 겪고 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하며 안전하게 갈 생각을 말아라.
-루터 백!
‘설교 잘하는 방법’ 고음과 저음 이렇게 사용하라 (3)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의 설교 코멘트
설교의 음정 높낮이는 강조점의 문제다. 강조점이 너무 많아서 진정한 강조점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설교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메시지의 정점을 똑같은 음정과 속도로 진행한다면 이 설교는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결단의 촉구는 절박함을 수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결단의 순간에 너무 과격한 방법을 사용한다거나 너무 빠르고 높은 음정으로 강조함으로써 막상 강조해야 할 부분들이 오히려 약화되는 경향이 있고 설교의 차분한 전개를 해치는 경우도 많다.
설교자가 너무 일정한 음정과 리듬을 사용하는 것은 회중을 매우 지루하게 한다. 또는 너무 일찍 고음에 진입했다가 전혀 내려오지 못한 채 계속될 경우 음정 조절에 완전히 실패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설교자들은 늘 주의해야 한다.
설교자는 메시지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게 전달해서 회중의 심령에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메시지가 어디에 있는지,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메시지는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 또한 높은 음정의 활용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높은 음정은 심장에서 나와야지 목에서만 나오는 음정은 오래 갈 수 없다.
적절한 고음과 저음의 사용은 설교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해 주며, 설교의 강조점을 회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해 주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설교자는 설교의 정점이 되는 곳을 3회 또는 4회 정도 되게 해야 하며, 그 정점은 철저히 저음에서 시작하여 중음으로, 그리고 고음으로 가는 단계를 거쳐서 산이나 파도와 같은 곡선을 그려야 한다.
또한 설교자의 음성은 확신에 찬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음성이나 자세가 단순한 강의의 모습이나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됨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음성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음성을 올바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좋은 음성을 가지고 강력한 호소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선포자가 되기 위해 설교자는 설교의 음정 높낮이 조절 연습을 충분하게 해야 한다.
‘설교 잘하는 방법’ 설교문 이렇게 외워라 (2)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의 설교 코멘트
기억한다는 말에는 다음의 몇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모든 말 하나하나를 암기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메시지 전반에 걸친 흐름과 내용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기억을 뜻한다. 설교자가 설교의 말 하나하나를 모두 정확하게 암기하는 것은 물론 좋다. 암기는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설교 전체의 흐름과 맥, 강조점, 시작과 기본 요소와 결론에 대한 전체적 이해이다. 설교자는 원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설교 전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설교자는 원고와 청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설교자의 암기하는 능력은 향상될 수 있다. 타고난 기억력이 사람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한두번 읽어 외운다면 기억력이 좀 뒤지는 사람은 세네번 읽어 외우는 식으로 노력하면 암기 능력은 발전된다. 뇌세포도 훈련을 거듭하면 어느 정도 기능 향상이 가능하다. 암기 능력이 좀 떨어져도 노력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교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스트레스는 암기에 나쁜 영향을 준다. 스트레스 때 분비되는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이 기억에 관련된 뇌의 한 부분을 위축시켜 기억력을 감퇴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지나친 스트레스는 기억력 향상의 적이다. 설교자는 토씨 하나까지 다 외워야 한다는 과중한 스트레스를 덜고 좀더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암기 능력은 또한 정신 집중력과 비례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암기하면 그만큼 기억력이 향상된다. 집중하지 않고 반복만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다.
가장 쉽게 암기하는 방법은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많은 기억법 중에서 일반적으로 쉽게 누구나가 활용하는 것이 반복 암기법이다. 반복 암기법은 암기해야 할 핵심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어서 머리 속에 저장하는 방법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겨 두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반복 암기를 통해 기억하고 잊고, 기억하고 잊고 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핵심 내용은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저장되게 된다.
암기는 시간차를 두고서 실시하는 것이 좋다. 한순간에 여러번 반복한다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질 만하면 암기하고 또 잊혀질 만하면 암기하는 것이 요령이다. 설교자가 설교를 작성한 후에 바로 집중해서 반복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반복하여 암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시간 간격이 너무 떨어져 반복 주기가 1일 이상 된다면 역시 효과가 떨어진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8~9시간 안에 반복해서 암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설교 잘하는 방법’, 성도의 마음을 파고 들어라(1)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의 설교 코멘트
설교자가 아무리 좋은 내용을 수고하여 준비했어도 그 내용이 회중과 공유되지 않고 허공을 친다면 이 설교는 어떤 회중도 감동시킬 수 없다. 설교자는 회중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설교는 본문의 언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적용으로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사이의 간격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강의와 별로 다를 게 없다.
회중의 삶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설교, 주석은 되었으나 회중의 오늘날 생활에 적용되지 못하는 설교는 완전한 설교가 아니다. 본문의 세계에서 발견한 메시지가 오늘날 회중의 삶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창조적인 적용을 한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를 전하는 설교를 통해 그 말씀과 행위를 오늘날 회중에게 연결시켜 주고,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느끼며,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구원을 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참된 설교는 성경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리란 강이나 협곡으로 말미암아 서로 단절되어 있는 두 장소를 연결짓는 수단이다. 다리는 반드시 두 세계 속에 동등하게 접지되어 있어야 하며, 왕래가 불가능한 곳의 교통을 가능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골짜기나 깊이 갈라진 틈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틈은 바로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의 넓은 간격을 의미한다.
설교자들이 가로질러 놓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천 년 동안 변해 온 문화의 넓고 깊은 간격이다. 설교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가 성경으로부터 흘러나와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즉, 설교자는 “이것이 이 본문의 원래 의미이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이 본문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이렇게 참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먼저 본문의 원의미를 찾기 위해 연구해야 하며, 그 본문을 현대의 회중에게 적용하기 위해 원리화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설교라 할지라도 그것이 오늘의 회중과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무런 힘도, 능력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는 먼저 본문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상적으로 계시해 놓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실 때는 언제든지 자기 백성의 삶이라는 상황 안에서 주셨다. 즉, 적용하려는 상황에 맞는 진리를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시대에 성경을 충실하게 설교하려면, 또 회중과의 공감대를 이루려면 하나님께서 당시에, 그리고 오늘날에도 주신 경고, 약속, 원칙, 계명을 적용하신 원래의 상황과 동일한 상황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설교자는 회중의 상황을 성경 해석학적으로 알아야 한다. 설교자는 회중의 상황을 매일매일 성경 해석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즉, 설교자들은 회중이 처한 각기 다른 상황을 판별해야 한다. 설교자는 린더 켁(Leander Keck)이 말한 바 있는 “제사장적인 들음(Priestly listening)”을 해야 한다. 이것은 설교자가 회중을 대신하여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특정 시기와 장소에 속해 있는 특정 공동체를 위하여 특정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설교자는 언제나 성경과 회중에 대한 성경 해석을 부합시키는-설교자가 회중을 위한 말씀을 그들을 대신하여 듣는-결정적인 지점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의 성경 구절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 매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설교자는 회중의 상황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삶과 일치해야 한다. 즉, “설교자는 회중의 자리로 내려앉아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실상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육화된 설교를 하고자 하는 설교자의 모습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설교자는 회중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설교자는 본문 속의 상황과 인물들의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회중의 삶의 애환을 알아서 회중이 본문 속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해야 한다.
설교자는 또한 현대 사회와 문화, 그리고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말씀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 설교의 필수적인 임무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역사적∙문화적 배경들 속에서 인간의 말로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그의 영원하신 말씀도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모든 특이성을 지니고서 육신이 되셨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하나님은 그분께서 교통하고자 원하시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셨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고, 인간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신성을 포기하지 않으신 채 인간으로 낮아지셨다.
설교자가 놓아야 할 다리도 역시 메시지의 신적인 내용을 손상시키거나 메시지가 전해져야 하는 인간적인 배경을 무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골짜기의 양편을 견고하게 이어주어야 한다. 즉, 고대와 현대,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며, 주의 깊게 두 세계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설교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관련시킬 필요성을 보아왔고 그 도전에 응답해 왔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듭니다”라고 말했다.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현대의 삶의 언어로 해석하며 오늘날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설교자는 먼저 본문의 세계로 들어가 그 성경 말씀 자체가 어떤 상황적인 맥락을 갖는가를 명백히 밝혀 주고, 다음에는 유추에 의해서 우리가 처한 상황 가운데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혀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회중과 설교자, 그리고 회중과 본문의 말씀의 공감대 형성은 어려워진다.
1.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보여달라
이순신장군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십니까?
역사는 위인전을 통해 알 수 있드시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요한복음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2:19절 "네가 하나님은 한분 이신 줄을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고 했는데 당신은 믿지 않으십니다.
어떤 과학자가 10가지 이상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 했다.
지구가 돌아 가는 것(공전.자전), 23도 기울어져 돌아서 4계절이 있는 것, 수많은 은하계가 충돌없이 움직임. 전파. 전기. 공기 등 이런 사건들은 우연히 되어진 일이 아니다. 반드시 만드 신자가 있습니다. 만드신 분은 성경상에서만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내 마음속에 계시고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2. 성경은 사람이 만들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딤후 3:16)
성경은 BC 1513∼AD 98년에 이르기까지 약 1600여년에 걸쳐 40명 이상의 선지자에 의해 기록된 책으로서 역사적사건과 일치하고 일관성이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가 오며, 현재 말씀대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미국의 한 과학자가 지구 역사상 하루의 시간이 빈 것을 알고 고민하다 그이유를 성경 에서 찾았다. (23시간20분+40분=24시간)
-왕하 20:10절: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감 (하루 1440분/360도=4분 10도=40분)
-여호수아 10:12∼13절 (아모리 전쟁)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 할찌어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지지 않았음 (23시간 20분)
"성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류 최고의 선물이다." -링컨-
"영국의 모든 영토를 버릴지라도 나는 성서를 버릴 수 없다." -엘리자베스1세-
성서속의 다윗-1993년 고대도시 '단'의 유적에서 '다윗의 집'을 언급하는 비문이 발견되었다.
"잇다른 발견으로 인해 성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고고학자 올브라이트-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3. "시댁이 불교라서-"
효심이 깊으신 분이군요. 하지만 시부모가 지옥가면 같이 가실 겁니까?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당신은 천국 갈 분 같아서 전도합니다. 부처는 훌륭한 성인이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신 신이십니다. 부처상 뒤에 가보셨나요? 제작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논 형상에 왜 1000배씩 절을 하십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성철스님-
조계종정으로 12년간 있으며 많은 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다가 93년 4월 타계함.
8년이나 앉은채 생활하며 고행하다 타계할 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일생동안 많은 남녀의 무리를 속여 지은죄가 하늘에 사무치고 수미산을 지나쳐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갈래가 되는구나." -조선일보 1993. 11 .5-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옥간다는 말을 남기고 운명함.
석가모니- 잔치집에서 음식먹고 식중독으로 세상을 타계함.
4. 제사 문제 때문에
제사란? 고대 중국의 '주공'이라는 사람이 만든 관습이다.
주공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불효자였다고 한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1년 먹을 양식으로
제사지내 효자 노릇 한것에 유래함.
한국의 경우 조선왕조를 창시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 활성화됨. 역성혁명 후, 무학대사에
게 민심을 안정시킬 방법을 묻자, 한민족이 예로부터 효심이 가득한 민족이므로 조상에게
제사를 자주 지내도록 권장하라고 한 것이 그 시초이다. 제사상에 제왕을 상징하는 '대추' 를, 재상을 상징하는 '밤'을, 6조 판서를 상징하는 씨가 6개인 '감' 을 진상하도록 하였던 것에 기인한다.
기독교에서는 죽은사람을 추모 한다는 '추도예배'가 있다.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조상님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기리는데에 그 의의가 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효' 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10계명)는 말씀도 있듯이 부모님 살아계실 때 참된효도를 다해야
할 것이다.
5. 모든 종교는 똑같다?
석가모니, 공자는 위대한 성인에 불과 합니다.
다른종교에서는 죄의 문제 및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에서 돌아가셨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으므로 "이루어 졌다."의 종교입니다.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믿음으로 얻는 종교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14:6)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참 종교
입니다. 결혼의 선택은 평생을 좌우하고, 종교의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6.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면 된다?
독약을 약이라고 먹게되면 죽게되고, 육상선수가 자신의 코스를 이탈해서 1등으로 들어와
도 실격당합니다.
"모든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롬3:23)라고 말씀 하셨
습니다.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인간은 성실하고 진실되게 산다고 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야 구원을 받습니다.
7. 부활을 믿을 수 없다.
부활을 증명 할 수 있는 10가지 증거
1. 역사적 증거: BC(Before Christ). AD(Anno Domini)를 전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다.
anno 해,년(年),나이..
Domini 신(神),주(主),성자..
A.D = anno Domini = anno domini mostri Jesu Christi(원래의 표기)
기원후 = 신의 해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
A.D를 영어로는 in the year of our Lord 라고 합니다..
2. 성서적 증거: 기록이 정확하고 신빙성이 있다. (행2:24, 마28:6)
3. 3사람이 부활함: 라인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 회당장의 딸
4. 주님 스스로 증거하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11:25)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6:32)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짐
5. 원수들이 증거함(시신을 훔쳐 갔다): 로마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훔쳐갈 수 있
는 상황이 아니었음.
6. 제자들이 증거함: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복음을 전파하러 다님
7. 군중들이 증거함: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2:32) 라고 베드로가 증언할 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
할꼬 하며 회개함" (행2:37)
8. 사회학적 증거: 유대인도 할례 대신 세례를 받음. 안식일 대신 주일(일)을 지킴
9. 성령의 증거: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행2:22-24)
10. 심증(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
8. 예수가 밥먹여 주냐? 왜 예수를 믿느냐?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러 오셨습니다. (고후8:9)
현재 먹을 것 뿐만 아니라 사후의 일까지도 책임져 주십니다.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16:16)
죄사함을 받기 위해 믿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믿습니다.
"영접하는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가기 위해 믿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5-16)
9. 죽으면 그만이다. 천국과 지옥은 없다!
사람에게는 동물과 달리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된지라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은후에 반드시 심판을 받으며 우리 '영혼'이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되어있습
니다.
미국에 가보지 않아도 Washington. D. C가 있다는 것을 믿듯이, 마귀의 종 된자를 보낼
지옥이 있습니다.
"불과 유황 못에 던지시니 세세토록 밤낯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10)
요한계시록 21장에 천국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눈물도. 근심도. 고통도 없는
파라다이스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10.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악하다.
농부가 가을에 거둘 쌀을 생각하면서 벼를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며, 추수하지만, 그속에는
반드시 가라지가 섞여있습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 중에도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롯 유다' 와 같은 사람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가 맘에 안든다고 병원에 안갈 수 있겠습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11. 하나님은 왜 악한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나요?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악한자를 전부 심판 하신다면, 당신은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자신 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12. 바쁘고 시간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지요.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하지만,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너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 (잠 27:1)
"인생은 한치 코 앞 일을 모른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받는일이 가장 급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느정도 마음이 열린 상태이므로 억지로 끌고 오기 보다는 주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주
어야 합니다.
13. 다음에 나이들면 믿겠다.
하루살이가 내일을 기약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어떤사고가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스 등)
하나님은 생명의 종말을 예고하지 않으며, 사람도 자신의 죽음의 시각을 모릅니다.
'바쁜일 끝나고, 성공한 후에, 노년에' 등의 핑계가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지금 오늘 숨쉬고 있을 때 믿음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순간의 결정이 '영원'을 좌우 합니다. 나중에 믿겠다는 말은 마귀의 그럴듯한 술책이며,
멸망으로 가는 함정이다.
14.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예수님은 당신 같은 분을 사랑하십니다. 죄를 깨달으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을 뿐만아니라 성령님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군요.
하나님께서는 당신 같은 분을 찾고 계십니다.
건강한 사람보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더 필요 하듯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구속자
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이땅에 오셨고,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당신을 위해
다시 사셨습니다.
15. 돈을 번 후에 믿겠습니다.
예. 돈을 벌어야 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돈을 잘 벌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되더라
구요. 사람의 행복이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주인이 되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법을 위반하는 출발점이다." -필론-
"돈을 지배하려고 하면 충종이되고, 돈을 섬기려 하면 가장 무서운 폭군이 된다." -히브리격언- 죽은후에 한푼도 가져 갈 수 없는 돈 때문에 영혼 구원의 문제를 뒤로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함을 배운사람이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고, 모든 승차권을 살 수 있지만 천국
승차권은 살수 없고, 모든 길은 막을 수 있지만, 죽음의 길은 막을 수 없다." -영국 속담-
16.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면 된다.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과 죄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우리에게는 원죄(계속
대를 이어 내려온 죄)와 자범죄(내가 지은 죄)가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롬 6:23) 이라고 성경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앞으로 죄를 짖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다고
장담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신 예수님 앞에 죄의 짐을 내려 놓으십시오. 그리하면 과거와 현재
의 모든 죄를 용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17. 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
제가 말하는 믿음은 대인 관계에서의 믿음이 아니고, 대신관계의 믿음을 말합니다. 당신이
누구를 믿든 믿지 않든지 자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을 자신과 결부 시켜 맞 대응 한다면, 그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만큼 높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대로만 살아지지 않는 것이 '삶' 인 것 같습니다.
제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18. 다른 종교는 믿어 보지 않고 기독교만 진리라고 하는 것은 독단이다.
그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종교는 그만 두고 일본에 있는 종교만 일만 가지
가 넘고 네팔에는 수억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세월에 그것들을 모두 경험
해 볼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죄와 사후의 문제를 해결 해 줍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무덤이 없습니다.(빈 무덤): 부활하셨기 때문임(고전 15:3-4, 15:12-22)
부활생명으로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종교입니다.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야만 구원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참 진리라고 하는 것은 독단이 아닙니다.
19. 학생은 공부가 우선?
그렇지요,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일이, 교수는 가르치는일이, 의사는 치료하는 일이 중요하지
요. 그러나 그 것은 본질상의 문제이지 우선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야 지혜와 명철을 얻어 공부도 잘 할 수 있고, 성공하게 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목적의식이 뚜렷해 질 때, 우리가 그 목적을 향해 최선
을 다 할 수 있어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20. 교회에 가면 술. 담배 못 하게 하니까.
술. 담배하는 사람을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끊을 것을 권하는 것 뿐입니다.
어디 술. 담배 끊는 것을 권하는 기관이 교회 밖에 없습니까? 병원에서도 권하고, 가정에
서도 권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체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체를 오염시키거나 해치는
것은 좋지 않지요. 선생님도 교회에 나오셔서 영생을 얻으면 누가 술. 담배 끊으라고 권하지
않아도 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오길 원하고 계십니다.
21.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 양심상 교회에 못 간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미워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이 큰병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미워하지 않을 수도 용서 할 수도 없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 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는 것 같이 우리도 다른사람을 용서 하시길 주님이 원하십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들고 교회에 나오시고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심으로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22. 헌금부담
교회는 헌금을 내는 일정액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정성 것 드리면 됩니다. 헌금은 억지로 내지 않고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 헌금은 구제비. 선교비. 교회 유지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크게 감사할 복을 주실 것입니다.
23. 왜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까?
믿는 자들도 어려움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인생은 고해" 라는 말과 같이 살아가노라면
누구든지 고통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예수 믿지않는 사람들은 고통이 닥쳐 올 때 좌절 할 수 있겠지만, 믿는 자들은 고통이
닥 쳐올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며,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갈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믿는자들이 누리는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자들에게는 '위기' 란 위험속에 기회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와진 시련은 소멸하는 불이 아니고 연단하는 불입니다,
"큰 곤경에 부딪칠때마다 신앙의 힘으로 실망하지 않고 극복해 왔다." -아인슈타인-
24. 교회에 안가도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니 참 반갑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조개탄이 혼자 있으면 꺼집니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있을 때 불꽃을 피우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 뜻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 -크리소스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면 교회를 찾으라." -루터-
25. 기독교를 어떻게 신뢰 할 수 있느냐?
예수님이 태어나기 수백년전에 예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예언되었으며, 또 이루어졌습니다. 메시아를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800년전에 예언됨
탄생-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4, 사9:6)
베들레헴에 탄생을 예언-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 찌라도 이스라엘
을 다스릴자가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악한 무리들이 내수족을 찔렀나이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시 22:16-18)
범죄자를 처형하는 십자가형은 이렇게 예언된 말씀이 있은 후, 수백년 후에 고안되었다.
부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고, 예언대로
다시 사셨다. (눅 24장. 마 26:32. 마 28. 고전 15:3-4. 고전 15:12-22)
이렇게 모든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 역사적으로 정확하므로 기독교를
신뢰할 수 있다.
26. 전도는 왜 하러 다닙니까?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며, 전도는 꼭 해야만 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을 완치 할 수 있는 약을 발견한 후, 그것을 혼자 가지고 있다가 활용도 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죄로인해 지옥가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 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119대원들의 구조 활동과 같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인도하여 살리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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